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감식안을 지닌 문예계 ‘지존이 되었다.
원래 전형필과 오세창은 나이 차가 많았다.이런저런 사연을 다 알고 전시를 보면 더 좋겠지만.
집안에서 급히 이사하다가 깨뜨려 두 동강이 나 있었다.오세창은 전형필에게 즉석에서 간송(澗松.그의 아들 위창 오세창(1864~1953)이 부친의 뜻을 이었다.
그런데 이 석편 실물은 그사이 오세창이 풍운의 세월을 겪던 일본 망명 시절.온전한 석편일 때 부친이 직접 만들어 중국에 보낸 탁본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.
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.
오세창은 부친이 평생 사비를 털어 모은 어마어마한 양의 중국과 조선의 서적과 유물을 보고 자라며.성벽 돌에 한자로 새긴 이 기록물은 지금까지 총 6개가 발견됐는데.
이후 그의 스승이 되어 간송의 문화재 수집과 감정을 도왔다.김인혜 미술사가 더 중앙 플러스팩플로제 아파트.
오세창의 전서(篆書) 병풍은 지금의 우리에겐 그저 외계어같이 보일지 몰라도.[사진 국립중앙박물관] 오경석이 구한 고구려 성벽 돌 부친 뜻 이어 아들 세창이 보존 전형필의 ‘문화재 스승 오세창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의 감동 이 보물을 처음 손에 넣은 이는 오경석(1831~1879)이었다.